여는 글 - 안철수
우리가 열망하는 사회
자고 일어나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2011년 9월 2일이었다. 전날 밤 나의 서울시장 출마 결심이 임박했다는 기사가 한 얼론을 통해 보도되었고, 그다음 날 서대문구청에서 열린 청춘 콘서트 현장은 취재진으로 우사라장이 됐다. 눈앞에서 그처럼 많은 플래시가 터지는 것은 생전 처음 봤다.
사실 그때 나는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생각을 막 시작한 정도에 불과했지만 언론은 90% 진도가 나간 것으로 기정사실화했다. 과거에 내가 기업가나 교수로서 기술과 경제 이야기를 나누던 언론인들과 달리 정치 영역에서는 말속에 담긴 '의도'와 '배경'에 훨씬 집중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숨은 의도도 없고 에둘러 얘기하지 않는 내 말이 다르게 전달돼 난감할 때가 많았지만, 한편으론 일하는 방식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서울시장에 출마하지 않기로 선언한 후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공익재단을 설립하는 일에 매진하면서, 한편으로는 정치권에 국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울림통으로서 소이을 다하겠다는 마음이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무엇을 얻거나 무엇이 되겠다는 욕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제3당을 만들라거나 4월 총선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라는 말씀들에 응하지 않았다. 총선 전에는 야권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그렇게 되면 야권의 대선후보가 제자리를 잡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수순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총선이 예상치 않게 야권의 패배로 귀결되면서 나에 대한 정치적 기대가 다시 커지는 것을 느꼈을 때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열망이 어디서 온 것인지에 대해서 무겁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오면서 진로에 대한 선택이 필요할 때마다 비교적 '짧고 깊은 고민'으로 결단을 내릴 수 있었지만 정치 참여 문제는 혼자 판단할 수 있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동안의 결정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내 삶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이었지만, 이 문제는 국가 사회에 대해 너무나 엄중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 기대를 거는 분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고, 내가 가진 생각이 그분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것인지, 또 내가 그럴 만한 최소한의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는 많은 분들께 우리 사회의 여러 과제와 현안에 대한 내 생각을 말씀드리고 그에 대해 의견을 듣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기업 현장에서, 학교에서, 정책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그리고 청춘콘서트를 포함한 대화의 자리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 '우리가 열망하는 사회'에 대해 생각을 나누었다. 그런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도 함께했다. 내 딸을 포함한 미래세대가 꿈을 키우고, 행복을 느끼며,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사회를 이루어가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이 책에는 그런 토론과 고민의 결과들이 담겼다. 앞으로 책임 있는 정치인의 역할을 감당하든, 아니면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세상의 변화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계속하든, 이 책에 담긴 생각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힘을 모아 나아가고 싶다.
이 책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내 생각을 보다 많은 분들께 구체적으로 들려드리고 많은 분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계획이다. 책에 담을 수 있는 내용에 한계가 있어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부분도 많지만 장차 다양한 자리를 통해 채워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여러분들께서 꼼꼼히 읽어주시고 허심탄회하게 조언과 비판을 해주신다면 앞으로 나아갈 길을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학기말과 겹쳐서 무리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대담작업을 맡아주신 제정임 교수님,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노력과 정성을 다해주신 김영사 박은주 사장님과 편집 관계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2년 7월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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