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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5%의 기적 (이민규)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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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의 기적 (이민규) - 프롤로그

프롤로그

기적은 이미 제 앞에 와 있었습니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진행성 질환입니다.

하지만 이 병을 정복하겠다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연구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제 병이 언젠가는 완치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렇지만 시력을 되찾은 뒤에도, 살면서 정말 중요한 순간을 만날 때, 그대마다 저는 조용히 눈을 감을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기적을 바라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이 우선 제가 태어난 것부터가 기적이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대학까지 가서 하고 싶은 연극 공부 실컷 할 수 있었던 것, 교통사고로 죽을 뻔한 고비를 무사히 넘긴 것도 기적이 분명합니다. 그저 그렇게 살아온 제 곁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늘 넘쳐납니다. 특히 제 작은 그룻에 한결같이 차고 넘치는 사랑을 담아주는 아내가 곁에 있다는 건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 눈이 멀어가는 아빠와 뇌종양에 걸린 엄마 사이에서 그토록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아이 지우가 태어난 것, 그것도 간절히 원하던 딸이라는 사실을 기적이라 하지 않는다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지구상에는 무려 9천여 종의 희귀성 난치병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작은 몸뚱어리에 그중 고작 하나만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참 기적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한 열 개쯤은 감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들어올 법도 한데 말이지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제가 이렇게 책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곧 연극 무대에도 다시 오릅니다. 이것 또한 분명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가 또 무언가 기적을 바란다는 건 인간적으로 좀 뻔뻔하단 생각이 자꾸 듭니다.

오늘 아침 당신이 만약 적당한 체온을 유지한 채 당신의 친숙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면, 전 자신 있게 말하겠습니다. 당신의 오늘 아침은 기적이었다고.

이 책의 제목은 '5%의 기적'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제 시력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사랑이나 희망 혹은 진실과 본질은 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수치이기도 합니다. 남은 5퍼센트가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지, 아니면 이미 우리가 경험한 기적을 다 모아도 앞으로 일어날 기적의 고작 5퍼센트밖에 안 될 정도로 남은 삶이 축복일지는 저 또한 살아봐야 알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제가 꿈틀거리는 한 기적도 늘 같이 꿈틀거린다는 사실입니다.

살아오면서 책 읽기를 꽤나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제 책을 만들어보긴 처음입니다. 종종 글쓰기도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글이 아니라 말이라고 여겨주십시오. 병을 공개하고 1년이 지나는 동안 못다 한 말들이 많았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방송을 통해서 할 수 있는 말은 항상 이런저런 이유로 한정적이고 제한적입니다. 하고 싶은데 못다 한 말들을 지면을 통해 모두 묶으라고 허락해 주신 출판사 생각의 나무 모든 분들께 마음속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같은 게 하나 있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지요, 이 책을 통해서 또 한 번 깨달았습니다. 제게 늘 도움을 주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닮고 싶은 많은 지인들 아울러 언제나 저를 묵묵히 웃는 얼굴로 바라봐주는 SM엔터테인먼트 모든 식구 들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짧은 글을 통해서라도 저에게 용기와 힘을 전해주시는 여러분께 늘 고마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여러분께서 해주신 기도는 제가 다시 누군가를 위해 바치는 기도를 낳았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기적이었습니다.



2010년 가을
6년 전 병을 진단받고 엎드려 펑펑 울던 그 책상 앞에서
이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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