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서 소개

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김나윤)

반응형

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김나윤)
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김나윤)

서문

네 아이의 엄마이자

한 사람으로 이렇게

난 사람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웃고 떠드는 것도 좋아한다. 음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나는 무엇이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무엇을 하든지 허락이 필요하고 가기 싫은 학교를 꾸역꾸역 다녀야만 했다.

한참을 기다려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굳이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을 젊은 시절에 겪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고행을 여러 번 겪었다. 굴곡의 시간들이 나를 만들어 나갔다. 사람들을 만나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기웃거리다 늪에 빠지기도 하고, 더딘 여정을 돌아 돌아 겨우 집을 찾아오기도 했다. 참다 터져 나온 눈물로 세수하고, 있지도 않은 자신감으로 화장을 하고 외출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되어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조금씩 깨닫는 삶의 지혜들을 모아 난 다른 삶을 결심했고, 결혼이란 걸 했다.

하나, 둘 아이들이 태어나고 셋째가 태어나자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하는 선녀가 되었다.

그래도 내가 걸어온 시간들이 나를 만들어 나가고, 그것이 내가 다른 누군가를 만들어 내는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난 온갖 실수투성이였고, 깨달아야 할 삶의 지혜들은 곳곳에 숨어 있었다.

난 서둘러 그것들을 주워 담았지만 충분치 않았다.

다음 날 또 그 다음날에도 늘 내가 부족하다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첫째 아들 이수를 키우며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왔는지 모르겠다. 나의 허물을 적나라하게 바라보고 또 다친 마음을 서로 위로하며 우리는 함께 커나갔다. 둘째 우태와 셋째 유담이와 함께하면서 난 더 많은 에너지를 위해 쏟아부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부모의 역할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게 되어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태와 유담이 사이에 유정이를 입양하기에 이르렀지만, 뒤에 일어날 수많은 일들에 대해선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엄청난 폭풍우를 신께서는 미리 알려주시지 않으셨다. 거듭되는 정망이 올 때마다 나의 슬픔을 위한 자리는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혼란의 시간을 버티어나가다 이 또한 삶이 나에게 조금씩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비록 예기치 않은 비가 뿌릴지라도 곧 무지개가 뜰 거라고 믿었다. 아이들을 대할 때의 나의 경솔함을 깨닫고 더 많은 걸 배울 필요가 있을 때까지 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제 안다.

내가 되어가는 시간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것들에 의해 완성된다는 것을.....

사람을 어릴 때만이 아니라 어른이 된 지금도 그리고 죽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시간에 의해 빚어지고 서로를 바꾸어가는 존재가 아닌가.

나의 아이들은 이런 나를 엄마라 부르며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을 같이 바라보며 오늘도 이야기 나누고 있다.

가끔 아이들에게 묻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한다고 느낄 때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나의 지나간 꿈들이 불쑥불쑥 마음속에서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 넷을 키우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구를 한 바퀴를 도는 것보다 사람 하나를 키워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야. 난 잠시 다른 값진 일을 하고 있을 뿐, 늦은 것 아니야'라고 말이다.

난 이 책을 쓰면서 아이들과 이렇게 살아가는 내 모습에 지나온 나의 어린 시절과 겪어왔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넣고 싶었다. 그런 시간들이 없다면 공감이 가지 않는 공허한 울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끔 누군가로부터 '대단하다', '어떻게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세요?'라는 질문을 듣는다. 아직도 나는 나 자신이 엄마로서 잘하고 있는 건지 늘 의문이 가득하고 늘 고민하고 있다. 어쩌면 큰 아이 이수의 방송 출연으로 인해 내가 어떤 특별하고 대단한 방법을 알고 있어서 아이들을 그렇게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데 나도 다른 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수의 전시회나 북콘서트 같은 행사들을 진행하고 참가하면서 멀리서 아이들 손을 잡고 그런 행사들에 참석해 주시는 부모님들이 나보다 더 대단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이 책을 통해 방송에서는 전할 수 없었던 나와 아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 이야기들이 어떤 점에서는 참 특이하고 남다르다 생각할 수 있는 것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들이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어떤 가정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들이고 오히려 비슷한 상황에서 더 잘해 나가고 있는 분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야기뿐 아니라 내가 살아오며 겪었던 일들과 느꼈던 점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며 추구하고 지켜나가고자 하는 여러 가지 가치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다른 부분도 있지만 서로 닮은 부분이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를 믿고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나눈다면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그런 부모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고 더 살아갈 맛이 나는 곳으로 변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이렇게 살아간다'라는 이야기를 전하지만, 책을 읽는 '다신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들과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에는 당신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도 있을 것이고 생각지 못한 부분들도,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다만 내가 전하는 이야기들 중에 당신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조금이나마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작은 용기를 내어 아이들을 낳고 또 아이를 데려와 이렇게 살아간다는 나의 이야기를 전한다. 책을 읽으시는 분들도 작은 용기를 내어 아이에게 서로에게 조금 더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직 아이를 가지지 않으신 분들도, 결혼을 미루고 계시는 분들도 조그만 용기를 내어 약간의 굴곡이 있겠지만 보다 값진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책이 나오기까지 곁에서 늘 함께해 준 남편과 아이들, 김영사 최은희 부장님과 고세규 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2019년 제주에서

김나윤

반응형
kakaoTalk naver facebook twitter kakaostory band

댓글